이창호 인터뷰
네이버에서 찾은 중앙일보 기사.
<인물 오디세이>
세계제패 10년 맞은 이창호9단 [중앙일보 2002-01-08 18:36]
바둑 승부는 마음의 격렬한 뜀박질이다. 파고드는 정신의 모서리는 바늘끝 처럼 예민하고
공격하는 정신은 폭풍처럼 살벌하다. 생과 사의 순간이 지나고 평온이 찾아왔다 싶으
면 다시 한집을 다투는 계산의 숨소리가 뒤통수를 조여온다.이창호9단은 17세 때 처음
세계대회에서 우승했다. 그 후 10년이 흘러 이젠 27세. 벌써 장가갈 나이가 됐다. 그
리고 올해는 중국 리그라는 새로운 무대에도 나가게 됐다. 홍안의 소년 시절부터 10년
간 세계바둑계를 완벽하게 석권해낸 이창호의 비밀은 무엇일까. 어쩌면 반상의 승부보
다 더 힘든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창호의 이야기는 시대적 금언(金言)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신년 벽두에 李9단을 찾은 이유다.생각하면 李9단의 진정한 가치는 강
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의 승부 스타일에 있다.그의 승부호흡은 한없이 느리다. 하나
그는 느린 것으로 빠른 것을 제압해냈다.그의 바둑은 화려하지 않으며 번득이지 않는
다. 눈앞의 실리보다 훗날을 기약하며 천천히 두터움을 쌓아간다. 이창호는 드문 사람
이다. 그는 이 정신없이 빠른 스피드 시대에 느린 것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보여줬으며
이처럼 참을성이 부족하고 지루함을 못견뎌하는 시대에 사막을 흐르는 강물처럼 멀고
아득한 인내를 보여줬다. 무욕(無慾)의 바둑으로 욕망이 칼날처럼 맞서는 승부세계를
평정했다. 이창호는 제일의 실력자이면서 후배와 동료들에게 자신의 터득을 있는 그
대로 드러냄으로써 한국 바둑의 내실을 키웠고 한국 바둑이 세계를 제패하게 하는 숨
은 동력이 됐다. 7일 오후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이창호9단은 이같은 평가에 대해
"꼭 그런 건 아닌데요"하며 전과 달리 자신과 자신의 바둑에 대해 진실을 전달하고자
애썼다. 그는 어느덧 사려깊은 청년이 돼 있었고 예전의 모깃소리로 말하던 뚱뚱하고
불가사의한 소년의 모습은 그 흔적도 찾을 길이 없었다. -李9단은 처음 만난 상대에
겐 잘 지지만 두번째 만나면 대개 이긴다. 그래서 전략의 명수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상대는 나를 알고 있고 나는 상대를 모른다. 그러나 두번째 판에선
나도 상대를 알기 때문에 승부가 좀더 쉬워질 따름이다."-李9단은 소위 '한건'이 없는
바둑을 둔다. 그래서 상대가 약하든 강하든 어렵게 이긴다는 평도 있다. 李9단의 실
력으로 중반에 크게 한건을 하면 승부가 쉬워질텐데 그렇게 고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건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전투적이 아닌 나의 소극적인 기풍 탓일지도
모른다. 위험한 데다 자신도 없으니까…. 또 한건 하는 바둑은 아무래도 승률이 떨어
질 수 있다."-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창호 바둑은 무미건조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보는 분들에겐 미안할 따름이다. 구경꾼에게 바둑은 흥망성쇠가 무상해야 재미
있겠지만 한건에 맛을 들이면 암수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정수가 오히려 따분
해질 수 있다. 바둑은 줄기차게 이기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고 줄기차게 이기려면 괴
롭지만 정수가 최선이다. 위험을 느끼면서도 혹시나 하고 샛길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
한다." (李9단은 타이틀전 등 강자들만 상대하면서도 지난해 승률1위를 기록했다)-李9
단을 두고 '바둑도 사람도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꿈속에서도 바둑만 생각한다
는 李9단이 세상사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바둑도 이런 저런 스타일을 시도한다는 얘기
다(李9단은 한때 때가 무르익었다는 의미의 풍래수면(風來水面)이라 쓰인 부채를 가지
고 다녔고 이 때문에 스타일의 변화가 임박했다는 얘기가 있었다)."지난번 끝내기 실
수로 중국의 창하오(常昊)9단에게 패한 뒤 그런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바둑
외길의 인생이라 해서 세상에 무심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세상사에 대한 관심은
외길의 인생이라 해서 세상에 무심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세상사에 대한 관심은
바둑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본다." (형세판단과 끝내기 능력이 탁월해 신산
(神算)이라 불리는 李9단이 끝내기 실수로 반집을 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이창
호의 집중력에 이상징후가 보인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李9단의 세상에 대한 관심
은 행사나 방송 등에 출연하는 등 요란한 것이 아닌 독서와 테니스에 국한되고 있다.
세계 최강자가 된 지 10년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청년이고 연간
상금이 10억원을 넘어섰지만 지금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반포 집과 홍익동 한국기원을
오가고 있다)-좀더 바둑의 본질에 가까이 가보자. 예로부터 내려오는 바둑 10결의 첫
번째가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는 부득탐승(不得貪勝)이다. 李9단이 무욕(無慾)의
바둑을 두게 된 것은 혹시 이를 의식한 것인가(李9단은 어렸을 때부터 수를 다 보고도
전투적이거나 살벌한 수는 여간해 결행하지 않았다. 수를 자랑하고 싶어 몸살이 날
나이인데도 그는 꾸준히 타협하고 판단해 급전을 피했다)."욕심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
까. 나도 승부욕이 강하다. 다만 욕심을 내면 전혀 모르는 길로 가서 큰 손해를 볼 수
있고, 욕심을 내 강하게 부딪히면 반작용도 크기 때문에 자제할 뿐이다."-李9단도 대
국할 때 상대에 대해 분노라든가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끼는가."감정을 느낀다. 그러
나 분노든 적개심이든 이런 것들은 최선의 수를 찾는 데 아무 보탬이 안된다. 투지를
높이기보다 오히려 시야가 가려지기 쉽다."-반전무인(盤前無人)은 최상의 대국자세라
할 수 있다. 李9단은 타고난 부동심(不動心)으로 저절로 반전무인의 상태를 보여주는
기사로 알려졌는데 평소 부동심을 위해 정신수양을 하고 있는가.가 부동심을 갖고 있
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다. 마음 속으로는 괴로울 때가 많고 걷잡을 수 없이 흔들
릴 때도 있다. 다만 그걸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행마의 속도에 대해 묻고
싶다. 바둑은 전쟁과 닮았기에 스피드는 능률적인 것이고 느린 것은 당연히 기피의 대
상이다. 그런데 李9단은 어떻게 느린 행마로 스피드를 제압할 수 있었는가."느린 쪽이
단지 둔한 수라면 스피드에 밀릴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능력이 부족해 둔
한 수를 잘 두고 그 때문에 초반엔 자주 밀리곤 한다. 그러나 빠른 게 꼭 좋다고 생각
지도 않는다. 느림에도 가치있는 느림이 있다. 가치있는 느림은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
있다."-바둑은 집으로 승부한다. 그 때문에 실리에서 뒤지면 초조할텐데 李9단은 태
연히 때를 기다리다가 이윽고 추격에 성공하곤 한다. 그 한없는 기다림이 고통스럽지
않은가.강수를 던지거나 옥쇄를 하고 싶은 충동은 일어나지 않는가."누구나 괴롭듯이
나 역시 마찬가지다.앞서가도 초조하지만 뒤에 처지면 더욱 초조하다.그러나 불리하다
고 해서 강수를 던지는 것은 억지일 때가 많다. 많은 기사들이 유리할 때 그런 억지를
받아주기도 하지만 고수들에게 그게 통하겠는가. 고통스럽더라도 정수를 두며 기다리
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조훈현9단의 능란한 임기응변은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바탕
으로 하고 있고,서봉수9단의 실전능력은 잡초와 같은 생명력이 원천이며, 유창혁9단의
공격력은 담백함이 밑바탕이고, 李9단의 바둑엔 고요함이 깔려 있다고 한다."내가 가
장 괴로운 쪽인 것은 맞는 것 같다."(그는 더 이상의 비교를 거부했다) -요즘은 어떤
책을 즐겨 보고 있는가."역사 쪽에 관심이 기울어진다. 최근엔 중국의 『사기』와 『
열국지』를 읽었다."-가장 관심이 간 대목은 어디인가."…월나라 왕 구천과 오나라의
전쟁 이야기도 흥미있었다."(李9단은 동고가동락불가(同苦可同樂不可)의 관상을 지닌
구천이 결국 오랜 세월 같이 고생한 자신의 신하를 죽이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내력
에 대해 얘기했다)-동료나 후배들이 李9단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좋아한다. 바둑은 언
제나 李9단이 이기는데 칭찬까지 받으니 그 비결이 궁금하다(李9단과 기성전 도전기를
두고 있는 목진석6단은 "창호형은 결코 일인자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선배와 대국하게 돼 기쁘다"고 말하고 있다)."…."-李9단은 올해 중국 리그에 참가한
다.한쪽에선 국보급 기사가 너무 쉽게 움직인다며 반대도 많은데(비행기 타기를 싫어
책을 즐겨 보고 있는가."역사 쪽에 관심이 기울어진다. 최근엔 중국의 『사기』와 『
열국지』를 읽었다."-가장 관심이 간 대목은 어디인가."…월나라 왕 구천과 오나라의
전쟁 이야기도 흥미있었다."(李9단은 동고가동락불가(同苦可同樂不可)의 관상을 지닌
구천이 결국 오랜 세월 같이 고생한 자신의 신하를 죽이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내력
에 대해 얘기했다)-동료나 후배들이 李9단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좋아한다. 바둑은 언
제나 李9단이 이기는데 칭찬까지 받으니 그 비결이 궁금하다(李9단과 기성전 도전기를
두고 있는 목진석6단은 "창호형은 결코 일인자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선배와 대국하게 돼 기쁘다"고 말하고 있다)."…."-李9단은 올해 중국 리그에 참가한
다.한쪽에선 국보급 기사가 너무 쉽게 움직인다며 반대도 많은데(비행기 타기를 싫어
하는 李9단은 중국측의 다섯번에 걸친 요청을 거부하다가 마샤오춘9단이 부탁해오자
장고 끝에 참가를 결심했다. 李9단은 자신에게 주요 대국에서 연전연패해온 馬9단의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1국에 1만달러인 대국료도 중국측이 정한 것)."약속이
기 때문에 1년만 간다. 기원에서 반대하기 때문에 내년엔 힘들 것 같다."이창호9단은
인터뷰를 끝내면서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바둑 실력을 키우는 비결을 한마디 해
달라고 하자 한참을 망설이다가 두가지를 버리면 바둑이 진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
로 '고정관념'과 '욕심'인데 李9단은 두가지가 냉정한 판단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
인이라고 본 듯하다.
박치문 전문위원 daroo@joongang.co.kr
***이창호 9단은▶1975년 전주에서 이재룡씨와 채수희씨의 차남으로 출생.▶7세 때 바둑을 배워 9세 때 조훈현 9단의 내제자가 됨.▶11세 때 프로 입단. 96년 9단.▶14세 때 국내대회 첫 우승 이후 88회 우승.▶17세 때 세계대회 첫 우승 이후 16회 우승.▶현재 994승 255패.▶연간 최
다승(90승), 최고승률(86.7%), 최다연승(41연승), 최다관왕(13관왕)등 기록 보유.▶96년 은관문화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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