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11092    nodeId: 11092    type: General    point: 152.0    linkPoint: 3.0    maker: cella    permission: linkable    made at: 2010.07.28 22:33    edited at: 2010.11.09 22:12
이창동 감독 2010년 작품.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은 그다지 흡족하지 않았었다. 완성도가 부족하다든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가. 그런데 <시>는 아무런 불만을
남기지 않는다. 보면서 몇 번 마음을 두드리는 부분이 있다. 보고 나서는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몇 년 만에 보는 걸작.

세 가지의 죽음이 배경에 깔려 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미자의 머릿속 단어들의 죽음. 시의 죽음. 그리고 여중생의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이 전면에 foreground 에 서성거린다. 예쁘게 차려 입고 다니는 미자. 요새는 듣기 어려운 미자의 예쁜 말투. 미자가 좋아한다는 꽃들. 시. 그리고 어린 아이들.

시가 완성되기 시작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현실과 만났을 때 부터다. 영화에서는 죽은 여중생이 투신한 다리 근처에서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 버리고 미자가 들고 다니던 메모지에 비가 노트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처음에는 메모장에 눈물이 떨어지는 것 같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메모지는 비어있는데 이건 마치 하나의 문구가 아니라 눈물이나 비를 메모장에 채워 놓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모자가 날아가고 비를 맞는 과정은 지극히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상상 속의, 지극히 주관적인 장면일 수도 있다. 허식은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비는 시를 적을 메모지는 물론 온몸을 흠뻑 적셔 놓는다.
비를 맞기 얼마 전, 죽은 아이의 어머니와 미자가 만나 좋은 날씨와 맛있는 살구 얘기를 하다가 정작 현실을 잊어버렸다는 걸 기억해 내고 도망치듯 돌아오던 날과 대비되는 날이다.

마지막에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완성된 시를 읽어가는 미자의 음성이 중간에 (아마도) 죽은 아이의 목소리로 바뀌는 부분은 앞의 비가 내리는 장면과 더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데 여기에서 미자라는 주체는 시가 노래하는 객체인 여자아이와 일체화되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또는 늙어가지만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는 여자와 막 피어오르는 나이에 죽어버린 여자의 일체화. 이 시점에서 관객은 나이와 생사의 초월을 무의식 중에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 일체화의 순간에 미자는 시가 되고 시가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시를 읽어가는 동안 미자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진으로만 보이던 여자 아이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보일듯 말듯한 표정. 이 마지막에 읽혀지는 시 <아네스의 시>는 이별을 노래하고 있지만 슬픈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마치 미자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환상이었던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쌓아 올려서 이런 효과를 낸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그러고 보면 초반부터 미자는 멋 부리는 여자라는 피상적인 이미지에 가둬지지 않는 면모를 보인다. 수퍼마켓 여자에게 죽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 (수퍼마켓 여자는 듣지 않는다)과 손자에게 죽은 아이에 대한 걸 물어보는 부분 (손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죽은 아이를 위한 미사에 가고 범행 장소로 사용된 학교 과학실에 가 본다. 시 강좌에서는 강사인 시인에게 서슴없이 자기 생각을 얘기한다. 그녀는 적극적이고 또한 솔직하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적극적으로 혹은 절실하게 찾아 헤맬 것. 찾아진 것을 솔직한 시선으로 볼 것.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을 궂이 찾는다면 이런 것들일 것이다. 도우미로 일하는 집의 중풍 걸린 노인과 관계를 맺는 것을 일종의 대속으로 본다거나 가족 이기주의를 도덕이 이겨냈다거나 하는 분석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그런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 낭송회에서 만난, 음담패설을 일삼으며 가끔 말초신경을 자극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사실은 올곧은 경찰관이고 울고 있는 미자에게 관심을 갖는 따뜻한 사람이며 손자를 체포해 갈 때도 세심하게 상황을 세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면 감독이 1차원적인 도덕주의자일 리는 없다.


ps. 2010. 11.8

일부를 다시 보게 됐다. 미자가 죽은 아이의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도 중요한 장면 중 하나. 치매에 걸려서인지 시와 풍경에 취해서인지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만 하다가 돌아서서 가는 미자. 문득 자신이 아이 엄마에게 사과하러 왔다는 걸 기억하지만 이미 그런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다. 마치 치매에 걸린 것처럼 잘 잊어버리고 외적인 아름다움에 취한 사람들 혹은 그런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Return to 우리는 공부를 못해 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