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11209    nodeId: 11209    type: General    point: 258.0    linkPoint: 1.0    maker: cella    permission: linkable    made at: 2011.02.02 07:27    edited at: 2011.02.02 20:58
숭인문
이길조 작품.

이길조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재미, 감동, 신선함, 등등 거의 모든 면에서 훌륭한 작품이다.
가끔 DC 무협갤에서 추천글을 봤지만 그다지 폭풍 추천은 아니었기에 무시하고 있었는데 늦게나마 보게 돼서 다행이다.
아마 이 품질을 끝까지 유지하면 지금까지 본 무협지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보통 무협지를 보면 비무 장면들은 초식이나 무공이름의 나열이다. 그런데 정작 싸우느라 바쁜 사람들이 초식 이름을 일일이 입으로 외친다는 건 사실 코미디. <숭인문>에서는 당연히 그런 부분이 없고 아주 상세한 묘사들이 나온다. 손이나 검의 위치, 자세 같은 것들이 마치 영화나 만화를 보듯이 시각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고 내공이나 무도에 대한 것이 거의 안 나오는 <대도오> 같은 작품과 다르게 숭인공이나 심검에 대한 묘사들이 생생하게 나온다. 무도의 깨달음에 대한 묘사도 아주 시각적이다.

주인공 뿐 아니라 여러 인물들에게 촛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얼음과 불의 노래>의 무협판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고. 그리고 각 부분의 분위기가 인물 각각에 따라 달라진다. 양진위나 조염방이 나올 때는 유쾌하고 웃긴다. 도무백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쓸쓸하다. 벽어언이 죽을 때는 가련하다. 따라서 나오는 인물들이 생생하다. 읽고 나면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이 거의 다 생각난다. 이런 일은 무협지를 읽으면서 거의 겪어보지 못했다.

작가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정해놓고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탁진형의 부인 사연경이 권력가의 손녀라는 설정이 몇 권 뒤에 가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같은 것들. 그런 것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면서도 입체적인 작품이 된다. 또한 짧은 공방에서도 선형적으로 단번에 결판이 나지 않고 반전과 재반전이 들어간다. 이런 점이 다른 작품들 보다 한 수 위라는 느낌을 준다.

무협지를 분류하자면 처음부터 주인공이 먼치킨이거나 그것에 가까운 경우와 무공이 없던 때부터 성장해 가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다. 각각이 나름대로의 재미를 주는데 이 작품에서는 여러 인물들에 촛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 주인공은 먼치킨, 조염방은 성장기를 각각 맡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완전히 먼치킨이면 허탈하기 때문에 아주 강력한 적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적과의 싸움을 아주 신선한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아주 웃긴다.

그리고 지생고와 같은 훈련방식이나 생명을 걸고 무공을 성취한다는 설정이 수긍이 가고, 이름을 되찾는 자가 된다든가, 일인, 이인, 혹은 견진아단 등의 명칭들이 단순하면서도 신선하고 격조가 있다.

2011년 1월 7권까지 나온 상태. 앞으로 한 두 권 정도 안에 완결이 될 거라고 한다. 아직 완결이 안 된게 아타깝고 너무 빨리 끝나게 된다는 게 아쉽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실제로는 책이 잘 안 팔린다는 소문이 있다. 요새 애들은 복잡한 것은 싫어한다는 해석도 있고, 제목이 튀지 않아서 그렇다는 평도 있고, 등등인데, 애초에 문제는 소장용의 책을 대여소용으로 영업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대여소나 만화가게에서 보통의 무협지나 환타지를 기대하는 독자층보다 오히려 서점에서 소설을 사 보는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누가 출판사에 충고를 해 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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