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11415    nodeId: 11415    type: General    point: 140.0    linkPoint: 3.0    maker: cella    permission: linkable    made at: 2012.03.06 21:31    edited at: 2012.03.08 21:33
낮과 밤
홍상수 감독 작품

이미 몇 년 전의 작품인데 이제서야 발견하고 보게됐다.
홍상수 영화는 재미있다. 별로 특별한 얘기도 아닌데 나오는 인간 군상들이 하는 짓들이 재미있다. 그런데 말하자면 블럭 버스터가 주는 류의 재미는 아니기 때문에 딱히 극장에 가서 보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단 보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한결 길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 러닝타임이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기야 홍상수 영화 중에서는 유일하게 해외에서 찍은 영화이니까 공간적인 스케일도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홍상수 영화는 누군가가 다른 지역에 가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상당히 풍성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한 개의 구절로 단순화하기 어렵다.
제목과 관련해서는 파리의 낮이 길어져서 낮인지 밤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는 대목이 있다.
그리고 <세상의 기원>이라는 그림, 새가 죽을 뻔 하다가 살아나는 장면은 주인공의 여자들에게 임신과 낙태가 이어지는 설정, 주인공의 부인의 가짜 임신과 연관된다. 홍상수 영화에서 숱하게 나오는 여자에게 추근대는 남자들이, 철학적으로 보면, 세상의 기원을 갈구하는 것과 같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기원>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 단순히 추근대는 남자가 세상의 기원으로 승화된다는 게 아니라, 단지 그 두 가지가 같은 것이다라고 얘기하고 싶은 것 같다. 어쩌면 홍상수는 제목을 <삶과 죽음>이라고 짓고 싶었지만 너무 진지하고 직접적인 제목이라서 그냥 <낮과 밤>이라고 한 건 아닐까? 진짜 임신은 낙태되고 낙태되지 않은 임신은 가짜다. 그런 걸 보면 이제껏 홍상수의 영화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혹은 (태어났던) 아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홍상수는 초기의 극적인 절망감은 옅어졌지만, 게다가 이제는 웃기기까지 하지만, 아직도 희망적이지는 않다.

가짜 임신과 진짜 임신, 가짜 포트폴리오와 진짜 포트폴리오, 꿈과 현실, 파리의 진짜 구름과 주인공 방의 구름 그림. 이러한 가짜와 진짜의 대비도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단순히 가짜가 나쁘고 진짜가 좋은 게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를 격조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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