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11755    nodeId: 11755    type: General    point: 46.0    linkPoint: 1.0    maker: cella    permission: linkable    made at: 2013.05.30 00:54    edited at: 2013.05.30 02:15
정의란 무엇인가
Michael J. Sandel 저. 이창신 역.

(사회적) 정의란 무엇인가를 논의하면서, Bentham 의 공리주의, Kant 의 순수이성, John Rawls 의 정의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 따른 관점들을 소개하고, 저자 자신이 주장하는 공동체주의의 관점을 소개한다.

크게 나누자면, 행복, 자유, 미덕의 세 가지 측면에서 정의를 살펴본다고 먼저 선언하고 행복이라는 면에서는 공리주의, 자유라는 면에서는 칸트와 롤스, 미덕이라는 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자신의 주장들을 소개한다. 각각의 주장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하기 때문에, 물론 많은 부분이 생략된 거지만, 서양 철학사의 큰 윤곽을 잡는 데에 유용한 책인 것 같다. 칸트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해, 하긴 이제까지 그렇게 큰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제야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공리주의는 개인들의, 설령 감각적인 욕구라도, 그 욕구를 충족시키면 행복이 커진다고 생각하지만, 칸트는 감각적인 욕구는 인간 자체, 순수 이성을 가진 인간이 순수하게 자유롭게 갖는 욕구가 아니라 외부의 조건에 기계적으로 반응하여 생기는 욕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런 욕구에 순응하는 것은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감각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서 행동하고 이때 아무런 선행 조건이 붙지 않은 욕구에 따라서 행동하고 이 행동은 결과적으로 도덕적이다. 이런 행동 규칙을 정언명령이라고 하는데 어떤 것이 정언명령인지를 판별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보편적이냐? 또한 인간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하느냐? (categorical imperative 를 정언명령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철학에서는 다들 그렇게 쓰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칸트의 철학은 개인의 인권을 강화하는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롤스의 이론은 게임 이론의 Minimax 문제와 일맥상통하는 분배 시스템이다. 얼마 전에 읽은 <The Philosopher and the Wolf>에서도 읽은 적이 있는데 아주 합리적인 방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그 나름의 목적이 있고, 그 중에서도 국가(polis)는 시민의 미덕을 고양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러니까 미리 정해진 절대적인 미덕이 있는데, 이 미덕에 따른 행동을 연습해서 익숙해지는 게 인간 혹은 시민의 목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매한 다수가 결정하는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미덕을 가장 잘 아는 철학자의 독재를 주장하고, 한편, (미덕에 따른 행동을 연습해야 하므로) 개인적인 수행을 통해서 미덕을 얻는다는 사고방식도 거부한다.

아마도, 롤스나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절대적인 미덕이란 없다고 주장한다고 보통의 철학자들은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양측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인간 개개인의 선택은 제각각일 수 있지만, 과거와 미래의 모든 인간의 선택의 평균치는 결국 절대적인 미덕과 일치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수가 아주 큰 수이기 때문에, Central Limit Theorem 에 의해, 그 평균치에서 벗어나는 수는 상대적으로 극소수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주장 중에는 몇 가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첫째, 공리주의는 물론 사회 전체의 행복의 총합을 최대화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개인의 희생을 간과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적인) 인권과 사회의 행복을 아우르는 수치를 개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의 인권이 침해 당할 때 낮아지는 행복의 양이 다른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면서 증가하는 행복의 양보다 많도록 만들면 된다. 대다수의 '사소한' 행복 증진을 위해 소수의 '심각한' 행복 저하를 감수하는 일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심각한' 행복과 소수의 '심각한' 행복 사이에서는 여전히 (소피의 선택화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어떤 이론도 마찬가지로 후련한 답을 주지 못하고, 그나마 다수의 행복에 손을 들어주는 공리주의가 더 합리적인 것 같다.

둘째, 고소득자에게 누진적인 높은 세금을 매기는 것에 대한 문제를 설명하면서 높은 세금을 찬성하는 주장들과 그에 대한 자유지상주의의 주장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저자가 놓치고 있는 관점이 있다. 고소득자는 그가 속한 사회 시스템에 빚을 진다는 점이다. 마이클 조던의 예를 보면, 조던이 선수생활을 가난하고 인구도 적은 나라에서 하는 것보다 미국에서 하는 경우에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얻을 것이다. 따라서 조던의 고소득은 미국이라는 사회 시스템 덕분이고 그가 덕을 본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 비유하자면 큰 배를 띄우려면 큰 물이 필요한 것이고, 큰 배는 그 만큼 큰 물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셋째,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독일인이 수 세대 전 유태인들을 학살한 것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하느냐의 문제에서, "내가 직접 학살한 적이 없으므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칸트나 롤스의 이론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다는 건데,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의 공동체주의가 사과를 해야하는 이유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칸트나 롤스가 본인의 잘못을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므로, 여기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현재의 젊은 독일인이 자기 할아버지, 혹은 국가적인 조상과 얼마나 동일시될 수 있느냐인데, 그 동일시의 정도는 그가 그의 할아버지나 국가적인 조상에게 얼마나 유산을 받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개인적인 경우를 보면, 유산 상속에 있어서 부채가 오히려 큰 경우 유산 상속 자체를 명시적으로 포기할 수 있듯이 어떤 현대 독일인은 자신이 독일인이기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독일인들은 독일인들이 역사적으로 현재까지 누적해 놓은 물질적, 정신적 유산이 충분히 많기 때문에 차라리 사과를 하고 과거의 선조들과 자신들을 어느 정도 동일시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서양 철학의 윤곽을 아주 쉽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 중고생들에게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번역할 때 원래 단어를 병기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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