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12026    nodeId: 12026    type: General    point: 32.0    linkPoint: 1.0    maker: cella    permission: linkable    made at: 2014.09.14 07:03    edited at: 2014.09.14 07:52
경주
장률 감독 작품.

박해일, 신민아 주연.

흘러가는 스타일이 홍상수 감독과 닮았다. 장률의 예전 작품들은 보다가 그만 둘 정도로 지루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좀 찾아봤더니 내가 봤던 것은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였다는 걸 알았다.

경주에 가 본 적은 있지만 불국사, 석굴암 만 찾아가보고 시내는 잠깐 드라이브를 한 정도. 그래서 옛 신라의 왕릉들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경주에서 사는 사람들은 거대한 죽음의 상징을 매일 옆에서 보면서 살아갈 것이고 뭔가 특이한 느낌을 줄 것이다. 마치 그런 경주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려는 것처럼 이 영화에는 죽음이 여럿 나온다.

죽음보다는 비중이 작지만, 이 영화에서 섹스 혹은 생명은 죽음과 겹쳐 있다. 나란히 있는 거대한 무덤 두 개가 여자의 가슴을 연상시킨다. 선배는 부인과의 육체관계가 과해서 죽었다는 소문이 돈다. 지나가다가 본 모녀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박해일이 옛 여자를 불러냈다가 의처증이 있는 여자의 남편에게 죽음의 위협을 느낀다. 도망가다가 오토바이들이 넘어져 젊은이들이 죽는 장면을 목도한다. 점치는 할아버지는 이미 죽었던 사람이라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손녀가 얘기한다. 마지막에 춘화를 보여주는 장면에 있던 사람 중 선배는 영화의 초반에서 죽었다는 그 선배인데 춘화의 남자와 닮았다.

재미있는 장면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찻집의 전 주인도 현재의 주인처럼 신민아. 점집의 할아버지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는 손녀의 얘기. 신민아의 집에 걸려 있는 중국 문인화가의 그림과 글귀: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그러니까, 생명과 죽음이 난무하는 삶이 잠시 멈추면 맑은 이면이 보인다는 얘기인 듯.
마지막에 박해일의 이야기는 도망가다가 강가에 다다른 상황에서 끝나고 신민아의 이야기는 춘화 위에 덧댄 벽지를 벗겨내면서 끝난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박해일이,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아는 사람과 상당히 닮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묘한 느낌을 갖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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