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2014년 작품.
과거 젊은 시절 수퍼 히어로로 출연한 영화로 유명했던 배우가 브로드웨이의 연극을 만들고 출연하면서 겪는 며칠 간의 이야기를 거의 한 take 인 것처럼 찍어냈다. 마치 연극을 찍듯이.
Birdman 의 포스터나 의상이 Batman 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주연인 Michael Keaton 이 1989년에 나온 Batman 의 주연이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노라면, 이것은 이중으로 현실과 영화, 영화와 연극, 연극과 현실을 뒤섞어 놓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니까 Keaton 이 이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그의 현실을 이 영화 속으로 가져오는 셈이다. 즉, 그에게는 이 영화가 현실이다.
이 영화 속에서, Thomson(Keaton 분)은, 혼자 있을 때에 한해서지만 영화 속 인물처럼 초능력을 발휘한다. 그에게 현실과 영화가 뒤섞여 있다. 그는 블록버스터에 출연하여 돈도 벌고 유명해졌지만 이제 연극을 통해 훌륭한 연기자가 되고 싶다. 연기자란 관객으로 하여금 비현실을 현실로 믿게끔 하는 사람인데.
한편, 영화와 그 안의 연극에서 공히 조연으로 나오는 Mike(Edward Norton 분)은 (영화 속에서) 많은 이들에게 뛰어난 연기자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는 연극 무대에서만 진실하다(아마 그런 대사였던 걸로 기억함.)고 스스로를 정의내린다. 심지어 Lesley(Naomi Watts 분)와의 불륜 장면에서 실제로 발기하고 그녀에게 실제 행위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연극이 현실이다. (Keaton 의 연기도 좋은데, 어떤 장면에서 Norton 은 정말 뛰어난 배우라는 걸 발견한다.) (Lesley가 브로드웨이에의 데뷔를 꿈꿔왔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Naomi Watts 도 그런 걸까?)
중간에, Thomson 이 막간의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뒷문으로 나왔다가 문이 잠겨버려서 팬티와 양말만 걸친 채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를 지나서 다시 정문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있다. 시간에 쫓겨서 그는 무대가 아니라 관객이 들어오는 문으로 들어와 관객 사이에서 다음 장면의 연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펼쳐지는 그의 연기는 마치 이 모멸의 짧은 시간과 거리를 통해 다시 태어난 듯 하다. 경황이 없어서 총도 없이 손을 총모양으로 겨누고 있는데도, 그는 정말 진짜처럼 보인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즉, 그는 무대에서 내려옴으로써 진정한 연기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Thomson 이 연극 속으로 현실을 가져올 때 (진짜 총을 가져와서 일어나는 사고를 통해) 그는 죽는다. (정말 죽는 것처럼 보인다.) 그 후에 그는 코가 날아갔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병원에서 깨어나고 (공포탄을 장전한 총이었나?)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그가 Birdman 처럼 창문을 열고 날아가고 (날아가는 것 자체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을 딸이 보면서 미소짓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딸이 기쁘게 웃는 모습에서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연극 무대 위에서 총을 쏜 다음에 일어난 행복한 결말이 모두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게 현실이라면 아버지가 날아다니는 것을 처음 본 딸이 그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고, 또한 결정적으로, 사람이 날아다닌다는 것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비현실이기 때문이다.
혹은, 감독이 영화의 전반부부터 개인적인 영역에서 출몰하던 비현실을 이제 공적인 영역에서, 현실로 적극적으로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의 관점에서, 그러니까 감독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어느 쪽이라고 확실하게 해 놓지 않는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연극은 Raymond Carver 의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라는 작품인데, 4 명의 남녀가 나온다. 특별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영화에 나온 걸로는 영화의 주제와 연결되는 어떤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솔직히 보통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종류의 재미는 없다. 하지만 훌륭한 연기에 훌륭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