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제 지음.
장 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강해.
(서설에 대한 부분만 읽은 후 감상)
먼저, 이 저자 조광제는, 흔히 실존이라고 불리던 것이 사르트르의 경우에는 현존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고 주장함.
용어를 정의하자면, 즉자는 사물의 내면, 그 존재를 의미한다. 사물의 표면을, 그것이 즉자에서 탈출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탈자라고 부른다.
탈자 중에서 그러니까 표면 중에서 인간 의식의 표면은 특별히 자기 자신의 내면을 향하기도 하기에 특별히 대자라고 부른다.
즉, 탈자 + 자기에의 현전 = 대자.
탈자는 (그리고 특별한 탈자인 대자도) 현존한다. 표면은 그 두께가 0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탈자는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상의 정의가 사르트르 고유의 것인지 그 이전에 이미 정의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르트르는 즉자를 무한한 밀도를 지닌 존재의 충만이라고 본다. (여기에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인지 단순히 그의 직관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게 그의 직관이라면, 종교와 다른 점이 없잖은가.) 그리고 그 존재의 감압에 의해 의식, 즉 대자가 생겨난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무는 기생충처럼 존재의 심장에 붙어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무는 바로 존재하지 않는 대자를, 존재는 즉자를 의미한다. 현존이 존재의 감압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현존은 존재의 간극(아마 빈틈이라는 의미인 듯.)이다. pp.13-14.
``후설이 드러낸 바로는, 모든 의식은 어떤 것에 대한(de) 의식이다. (중략) 의식은 `내용'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p. 48.
(즉, 의식은 비어있는 무다.)
``(전략) 절대자는 그 경험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비실체적인(non-substantiel) 절대자다.... 그러나 의식이 절대자로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의식이 순수한 외현이기 때문이고 (세계 전체가 의식 밖에 있기 때문에) 의식이 전적인 공(空, le vide)이기 때문이며, 의식에서 외현과 현존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p. 54.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여기에서 사르트르는 에고의 의식과 순수의식을 혼돈하고 있는 것 같다.
``데카르트 이후 칸트를 거쳐 후설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근대철학은 인식 위주의 철학이었지요. (중략) 요컨대 근대철학은 현상으로서 주어지는 일체의 존재를 현상 자체로 만들어 버렸다고 할 수 있는데, 사르트르가 그러한 현상 일변도의 철학을 잘못된 것으로 보아 제자리에 자리 잡도록 하려는 것이지요." p.56.
즉, 한 마디로 버클리가 말한 `존재는 지각된 것이다'라는 언명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존재가 현상되는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존재의 현상'을 특별히 강조했던 것이었으며, `존재의 현상'에 대해 그 `초현상적인' 근거를 찾으려 했던 것이었고 그 초현상적인 근거가 결국은 존재, 즉 즉자라는 것이지요." p. 57.
``존재에 있어서, 지각하는 것(지각함)이 지각된 것(지각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영향을 받는 것으로서 지각된 것은 어떤 방식으로건 이미 주어져 있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지각하는 자에 의해] 존재를 받기 전에 이미 존립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p. 62.
(수동성에 대한 논리전개가 있지만, 굳이 수동성을 고집할 이유는 없으므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존재에서 현상으로의 일방통행이 성립한다는 어떤 근거도 (설사 그 자체를 직관적으로는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한편, 메를로-퐁티는 의식 대신에 몸을 도입함으로써 처음부터 존재론적인 입장을 견지해 버립니다. (중략) 이에 반해 사르트르는 후설 현상학 내부에 거점을 두면서도 지각된 것인 대상(사물)의 존재 자체를 확보해 내고자 하기 때문에 서로 다릅니다." p. 65.
``사르트르는 이 지향성을 후설처럼 해석해서는 안 되고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의식은 무엇인가에 대한(de) 의식이다. 이것은 초월(transcendance)이 의식의 구성적 구조라는 것, 즉 의식은 자기가 아닌 존재를 목표로 해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가 존재론적인 증거라 부르는 것이다." p. 68.
즉, 존재가 의식보다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서는 `현상의 존재 = 초현상적 존재 = 존재'를 아예 `즉자'라 부른 것이지요. 결국은 바로 이 `즉자'가 초현상적으로 현상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생각입니다." p. 74.
즉자란, 맨 처음의 것, 다른 것에 의해 조건지워지지 않는 것의 의미인 것 같다.
``존재의 즉자적인 견고함은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 너머에 있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부정과 긍정 너머에 있다. (중략) 사실상, 존재는 그 자신으로 꽉 차 있고,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존재는 그 자신에게 불투명하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존재는 있는 그대로의 그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최대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p. 78.
``이행(利行)들, 생성들, 그리고 존재가 될 그것으로 아직 있지 않다거나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이미 그렇게 있다고 말하는 것을 허용하는 일체의 것들은 존재에게서 원칙상 거부된다. (중략) 존재는 충만한 긍정성(pleine positivite)이다." p. 79.
``즉자 영역에서는 시간이 존립할 수 없습니다." p. 79.
사르트라가 생각하는 즉자존재란, 라마나 마하르쉬의 순수의식, 진아 같은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책상같은 하나의 사물이 하나의 즉자를 내면에 갖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면 책상이 불에 타버리는 것은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서설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남은 질문들:
의식의 생성은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설명하는가? 그리고 즉자존재가 구체적으로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