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12155    nodeId: 12155    type: General    point: 167.0    linkPoint: 1.0    maker: cella    permission: linkable    made at: 2015.10.08 02:01    edited at: 2015.10.08 02:01
쟁선계

몇 년 전 재연재를 시작한 쟁선계가 드디어 19권으로 완결되었다.

여러 해박한 지식과 재기 넘치는 문장들이 넘쳐나는 작품이지만 그런 만연체가 내 취향에는 잘 맞지 않는다.
게다가 한꺼번에 내리 읽어가노라니까 나중에는 지루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일관성의 결여다.
흔히 수준 이하의 무협소설에서 나타나는, 무공의 밸런스가 안 맞는 문제는 아니지만, 성격이나 상식에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거슬린다.

예를 들어 곽조의 녹림과 우근의 개방이 전투를 벌이는 부분.
처음에 곽조는 우근보다 훨씬 고수인 걸로 나온다. 전력을 보더라도 녹림이 개방보다 더 강하다. 개방과 우근이 죽으러 가는 꼴이다. 불의의 습격을 하는 쪽에서 충분한 준비도 없이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차라리 후반에 도와주러 온 사자검문과 미리 약속을 했었다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이런 억지스러운 전개를 하는 이유는 궁지에 몰렸다가 전황을 뒤집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마도 이재일 작가의 특징인 것 같다. 극적인 반전을 위한 억지스러운 전개. 등장인물들을 지능이 낮게 묘사하면서 독자가 수긍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독자의 지능이 그만큼 낮거나 아주 관대하다고 추정하는 것인데, 상당히 거슬린다.

백운평을 멍청이로 만들어서 이창을 한껏 위로 올려 놓았다가, 그 다음에는 이창을 멍청이로 만들어서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것도 비슷하다.

한편, 석대원이 수백 명의 목을 베어낸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그런 학살극을 벌일 필요가 있나? 석대원이 보여주는 무위로 보건데 차라리 수백 명을 기절시키거나 부상시켜서 제압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마치 혈마귀가 제거된 게 아니라 골수에 스며들어서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강시가 된 자기 숙부는 건드리지도 못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때려주고 싶다.

이 단천원의 장면도 웃긴다. 머리가 엄청 좋다는 문강이 자랑하는 강시는 혈랑곡의 두 명의 고수에게 죽음을 당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뭘 믿고 도망을 안 가고 남아있단 말인가? (도주로가 있다는데도 도망가지 않는다.) 혈랑곡의 두 고수는 호신강기 파괴, 그 다음에 처치의 이 단계로 강시를 아주 간단히 처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호신강기 파괴자가 당하기는 하지만), 이걸 석대원이 못하는 이유가 뭘까? 석대원을 이렇게까지 멍청이로 만들어야 부자상잔의 극적인 장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역시 극적인 장면을 위한 억지스러운 전개다.

그래서 결국, <묘왕동주>나 <칠석야>보다 훨씬 수준이 낮은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극적인 장면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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