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 지음.
1991년에 출판된 <Consciouness Explained>를 2013년에 도서출판 옥당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책이다.
데닛은 너무 말을 늘어놓는 스타일이다. 한 문장이나 문단에서 보이는 문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한 절이나 장의 스케일에서 볼 때 그러하다.
흥미로운 부분들이 몇 군데 있지만 저자가 너무 자신의 주장을 부풀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제목에서부터 거창하게 consciousness 를 설명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다루는 내용은 thinking 이나 cognition 에 대한 설명이다.
처음에는 "데카르트의 극장"을 공격하기 위해 Max Wertheimer 가 발견한 Phi Phenomenon 을 가져온다. (p.159)
특히 Paul Kolers 와 Michael von Grunau 가 실험하고 Nelson Goodman 이 분석한 실험을 다룬다.
시각(visual angle)이 4도 정도 벌어져 있는 두 지점이 있다고 하자. 한 지점에 빨간색 점을 150 msec 동안 켰다가 끄고 50 msec 이후 다른 지점에 녹색 점을 150 msec 동안 켰다가 끈다. 이것을 반복하면 빨간색 점이 녹색 점의 위치로 이동하다가 중간에서 녹색 점으로 바뀌어 이동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실험 이후 실험대상의 주관적인 진술에 따른 것이다.) 이상한 것은 이러한 중간 지점, 중간 시점에 일어나는 색 변환이 맨 처음부터 보인다는 것이다. 처음에 녹색 점이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시점에 이러한 변환이 먼저 보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짧은 시간 간격의 스케일에서는 이렇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는 건데, 기억을 재조정했다거나(저자에 따르면 오웰식) 인지 과정에 원래 이 정도의 재조정이 일어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다든가(저자에 따르면 스탈린식) 하는 이론들이 있다.
한편, 보통 사람들은 한 쌍의 스테레오 스피커들이 놓여진 방에서 음악을 들으면 음악은 마치 스피커들 사이의 중간에서 들려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을 일종의 투사라고 표현하는데, 스피커 사이의 아무것도 없는 지점에 공간적인 투사가 일어나듯이 Goodman 은 파이현상에서 시간적인 투사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투사는 녹색 점을 본 이후에 일어날 테지만 실험대상은 그 선후관계나 인과관계에 상관없이 그렇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데닛이 지적하는 것은, Goodman 의 투사가 '변환'을 끼워넣고 그것을 '자아'가 인식하는 식으로 설명할 필요가 (데카르트의 극장 모델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데닛의 모델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분산형의 모델이기 때문에 '자아'가 (뒷부분에서 데닛은 이 '자아'도 사실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투사된 변환이 완성된 다음에 그것이 '자아'에 들어올 필요없이 그냥 여러 입력이 '자아'에 들어와서 투사된 변환으로 인지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이해를 돕기 위해 일종의 중간 단계로서 위의 문장으로 설명했지만, 데닛에 따르면, 사실은 '자아'도 없기 때문에 위의 설명에서 뭔가가 '자아'로 들어와서 인지하는 것도 데닛의 모델은 아니다.
그러면 결국 데닛의 모델은 무엇인가? 인지와 생각의 과정은 분산형이라는 것이 데닛의 주장의 기반인데, 여기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인식된다는 것인지, 혹은 어떻게 의식하게 된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이 책에서 빠져있다. 이것이 이 책의 문제다. 정작 중요한 핵심은 빠져있는데 그 핵심을 설명한다고 (제목에서부터)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데카르트의 극장"의 필요성을 제거하지 못했다. 의식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한 가지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은 끝부분에 '자아'가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자아'가 서사적인(narrative)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서사적인 이야기가 '자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데닛이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도 그렇게 밝히고 있다.